Topic Research · 통합 리포트
여성의 배움을 일으킨 사람들
배움이 여성에게 좀처럼 허락되지 않던 시대, 학교의 문을 연 사람들이 있었다. 이화를 시작한 메리 스크랜튼에서, 공주의 사애리시, 배화의 캠벨, 협성의 채부인,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나 이화여전을 이끈 앨리스 아펜젤러까지 — 여성의 자리를 처음 마련한 이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선교사 8명
활동기간
이 주제의 선교사

“우리 학교는 무엇보다도, 조선 소녀를 더 나은 조선 소녀로 길러내는 학교입니다.”

“한국의 맹인과 농아의 처지는 참으로 가련하다.”
미감리회 여선교사로 1900년 입국해 충남 공주를 중심으로 38년간 여성 교육에 헌신했다. 1905년 공주 최초의 여학교(명선여학당, 훗날 영명여학교)를 세워 '공주 근대 여성교육의 어머니'로 불린다. 특히 영명학교에서 유관순을 발굴해 이화학당 편입을 주선한 첫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선교를 거쳐 1897년 내한한 남감리회 여선교사. 1898년 캐롤라이나학당(훗날 배화학당)을 세워 한국 근대 여성 교육의 토대를 놓았고, 학당의 예배 모임에서 출발한 신앙 공동체는 오늘의 종교교회로 이어졌다.
1892년 북감리회 여선교사로 내한해 이화학당 제3대 당장을 지냈다. 약 15년 재임 동안 교과를 개편하고 1904년 정부 인가 4년제 중등 과정을 세웠으며, 룰루 프라이와 함께 한국어 최초의 생리학 교과서(1899)를 편찬했다. 1909년 콜레라로 별세해 양화진에 안장됐다.
1913년 남편 빅터 채핀과 함께 입국한 미감리회 여선교사. 1916년 남편 별세 후에도 한국에 남아 부인성경학원 교사·원장을 거쳐 1920년 협성여자신학교 초대 교장으로 취임해 한국 여성 신학교육의 기틀을 마련했다. 1931년 감리교 여선교사들과 함께 목사 안수를 받았다.
배재학당을 세운 헨리 아펜젤러의 장녀로 서울 정동에서 태어났다. 북감리회 선교사 겸 교육자로, 1925년 이화학당 대학과를 이화여자전문학교로 승격시켜 그 초대 교장을 지냈고 한국 여성 고등교육의 기틀을 닦았다. 1950년 예배를 인도하던 중 별세했다.
남편 유서백과 함께 1907년 내한한 남장로회 여선교사. 전주에서 여성 사경회와 학교 교육을 맡다 1911년 목포로 옮겨 정명여학교를 운영하며 여성 교육에 힘썼다. 남장로회 한국 선교를 정리한 영문 저서 『Day In and Day Out in Korea』(1920)를 남기고 그해 별세, 광주 양림동에 안장됐다.
관계의 흐름
- 계승·후임배의례 → 메리 스크랜튼· 메리 스크랜튼의 이화학당을 이은 제3대 당장
- 계승·후임채부인(안나 채핀) → 메리 스크랜튼· 스크랜튼의 여성 성경교육 계보를 협성여자신학교로 발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