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유서백과 함께 1907년 내한한 남장로회 여선교사. 전주에서 여성 사경회와 학교 교육을 맡다 1911년 목포로 옮겨 정명여학교를 운영하며 여성 교육에 힘썼다. 남장로회 한국 선교를 정리한 영문 저서 『Day In and Day Out in Korea』(1920)를 남기고 그해 별세, 광주 양림동에 안장됐다.
유애나는 1907년 남편 유서백과 함께 조선에 들어왔다. 남장로회가 보낸 부부 선교사였고, 그들이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전주였다. 낯선 땅에서 부부는 각자의 몫을 나누어 일을 시작했다.
그의 자리는 여성들 사이였다. 글을 모르고 배움에서 멀었던 조선의 여성들에게, 그는 사경회와 학교를 통해 읽고 배우는 길을 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르치는 더딘 일이었다.
1911년, 부부는 목포로 옮겼다. 그곳에서 유애나는 정명여학교를 맡아 운영하며, 호남의 여성 교육에 힘을 쏟았다. 전주에서 목포로, 그의 손길이 닿는 자리가 넓어졌다.
그는 가르치는 일만이 아니라 기록하는 일도 했다. 남장로회의 한국 선교가 날마다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그는 영문 책 『Day In and Day Out in Korea』에 담았다. 평범한 하루하루의 선교가, 그렇게 글로 남았다.
그러나 그 책이 나온 1920년, 유애나는 세상을 떠났다. 자신이 기록한 그 '날마다'의 수고를 더 이어가지 못한 채, 그는 광주 양림동 묘역에 잠들었다.
화려한 사건이 아니라 매일의 가르침과 기록으로 채워진 삶이었다. 날마다 반복되는 작은 일들이 쌓여 한 사람의 생애가 되고 한 지역의 교육이 되었음을, 그의 책 제목이 조용히 일러준다.
연표
- 1907
남편과 함께 내한, 전주 부임
- 1911
목포로 이임, 정명여학교 운영
- 1920
저서 출간·별세, 광주 양림동 안장
이 페이지 인용하기
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유애나 (Anabel M. Nisbet, 1869–1920)」.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nisbet (열람: 2026. 7. 4.)
유애나의 삶에서,
당신은 무엇이 아름답다고 느꼈나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이 질문을 가지고 가세요 —
나라면 무엇에 내 삶의 값을 치르고 싶은가.
복음이라는 바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