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media Commons“한국의 맹인과 농아의 처지는 참으로 가련하다.”
여성과 장애인을 위해 헌신한 의료 선교사. 광혜여원에서 여성을 진료하고 평양에 한국 최초의 맹인학교를 세웠다. 남편과 딸을 한국에서 잃고도 남아 사역했으며, 셔우드 홀의 어머니다.
로제타 홀은 미국 뉴욕의 농촌에서 자란 여성이었다. 그는 의사가 되었다. 여성이 의사가 되기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의술을 익힌 그는 그 기술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기를 원했고, 조선이 그 부름의 자리가 되었다.
1890년 그는 여의사로 입국했다. 당시 조선 여성들은 남자 의사에게 몸을 보일 수 없어, 병이 들어도 치료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일이 많았다. 여의사 로제타의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는 처음 열린 문이었다. 그는 광혜여원에서 여성들을 진료했다.
조선에서 그는 동료 의료 선교사 윌리엄 제임스 홀과 결혼해 가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행복은 길지 않았다. 남편이 평양에서 환자를 돌보다 병을 얻어 일찍 세상을 떠났다. 얼마 뒤 그는 어린 딸마저 이 땅에서 잃었다. 남편과 딸을 한국 땅에 묻은 것이다.
그 상실 앞에서 그가 본국으로 돌아갔다 해도 누구도 탓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남았다. 슬픔을 안은 채 다시 일터로 돌아왔다.
그는 가장 약한 이들에게로 갔다.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평양에 한국 최초의 맹인학교를 세웠다. 점자를 만들고,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했다. 누구도 돌보지 않던 자리였다.
그의 아들 셔우드 홀은 훗날 결핵과 싸우는 의사가 되었다. 한 가정의 슬픔과 헌신이 다음 세대로 이어진 것이다. 잃을 것을 다 잃고도 그 자리에 남은 사람—그 머무름이 그의 가장 큰 사역이었다.
- 1890년 여의사로 입국, 보구녀관(여성병원)에서 진료
- 남편 윌리엄 제임스 홀과 딸을 한국에서 잃고도 남아 사역
- 1900년 평양에 한국 최초 맹인학교 설립, 한글 점자를 고안
- 여성 의학교육(경성여자의학강습소)을 추진해 한국 여성 의사 양성의 길을 엶
한국 최초의 맹인·농아 교육과 여성 의학교육의 길을 열었고, 아들 셔우드 홀(크리스마스 실)과 더불어 3대에 걸친 홀 가문의 헌신을 한국에 남겼다. 그녀가 기른 박에스더는 한국 최초의 여의사가 되었다.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조선을 집으로 삼았습니다. 양화진에 잠들어 있습니다.
심화 연구 · 학생 탐구이름 없는 이들에게 이름을 — 로제타 셔우드 홀이야기 읽기 →연표
- 1890
여의사로 입국
- 1894
광혜여원에서 여성 진료
- 1900
평양에 한국 최초 맹인학교 설립
관계
관련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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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Rosetta Sherwood Hall and her children, Edith and Sher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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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Rosetta Sherwood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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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로제타 홀 (Rosetta S. Hall, 1865–1951)」.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rosetta (열람: 2026. 7. 4.)
로제타 홀의 삶에서,
당신은 무엇이 아름답다고 느꼈나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이 질문을 가지고 가세요 —
나라면 무엇에 내 삶의 값을 치르고 싶은가.
복음이라는 바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