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media Commons평양에서 의료 선교를 펼치다 청일전쟁 중 환자를 돌보던 끝에 병을 얻어 순직한 의사. 로제타 홀의 남편이자 셔우드 홀의 아버지다.
윌리엄 제임스 홀은 캐나다의 가난한 농촌에서 자랐다. 넉넉지 못한 형편 속에서 그는 어렵게 공부해 의사가 되었다. 자신이 고생하며 자랐기에, 그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의 처지를 잘 헤아렸다.
1891년 그는 의료 선교사로 조선에 들어왔다. 그는 동료 여의사 로제타와 결혼해 가정을 이루었고, 북녘의 평양으로 가서 의료 선교를 펼쳤다. 평양은 그때 복음에 적대적이고 거친 땅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았다. 좋은 조건을 따지지 않고, 가장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로 갔다. 그의 진료는 늘 변두리에서, 어려운 사람들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1894년 청일전쟁이 터졌다. 전쟁은 사람들을 다치게 했고, 평양은 그 한복판이 되었다. 그는 피란하지 않고 남아, 부상자와 병든 이들을 돌보았다. 그러다 그 자신이 병을 얻었다.
환자를 돌보던 끝에 그는 쓰러졌고, 서른넷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아내 로제타와 어린 아들 셔우드를 남긴 채였다. 그의 사역은 채 몇 해가 되지 않았다.
짧은 생이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아내는 슬픔 속에서도 이 땅에 남아 일했고, 갓난아이였던 아들은 자라 결핵과 싸우는 의사가 되었다. 한 사람의 이른 죽음 위에서, 한 가정의 긴 헌신이 이어졌다.
- 1891년 입국, 평양에서 의료 선교를 개척
- 빈민·환자를 돌보며 평양 선교의 기초를 놓음
- 1894년 청일전쟁 중 부상병·환자를 돌보다 발진티푸스로 순직(34세)
그의 순직은 평양 기독교 공동체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홀 가문이 대를 이어 한국 의료선교에 헌신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그를 기린 기홀병원은 평양 의료의 중심이 되었다.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조선을 집으로 삼았습니다. 양화진에 잠들어 있습니다.
연표
- 1891
입국, 평양 의료 선교
- 1894
청일전쟁 중 순직
관계
관련 영상
원본 사진 모음 · 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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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James Hall (January 16, 1860 – November 24, 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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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James Hall (January 16, 1860 – November 24, 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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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s from the early life of William James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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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윌리엄 제임스 홀 (William James Hall, 1860–1894)」.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wjhall (열람: 2026. 7. 4.)
윌리엄 제임스 홀의 삶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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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질문을 가지고 가세요 —
나라면 무엇에 내 삶의 값을 치르고 싶은가.
복음이라는 바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