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남편 빅터 채핀과 함께 입국한 미감리회 여선교사. 1916년 남편 별세 후에도 한국에 남아 부인성경학원 교사·원장을 거쳐 1920년 협성여자신학교 초대 교장으로 취임해 한국 여성 신학교육의 기틀을 마련했다. 1931년 감리교 여선교사들과 함께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안나 채핀, 한국 이름 채부인은 1913년 남편 빅터 채핀과 함께 조선에 들어왔다. 미감리회가 보낸 부부 선교사였고, 새 땅에서 함께 일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그 시작은 오래가지 못했다. 1916년, 남편 빅터 채핀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함께 온 길에서 혼자 남겨진 그는, 그러나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그는 한국에 남아 여성들을 가르치는 일에 자신을 두었다. 부인성경학원의 교사로, 또 원장으로, 그는 슬픔을 안은 채 다시 학생들 앞에 섰다.
1920년, 그는 협성여자신학교의 초대 교장이 되었다. 여성도 신학을 배우고 교회의 일꾼으로 설 수 있도록, 그 배움의 자리를 처음으로 연 것이다. 메리 스크랜튼이 시작한 여성 성경교육의 흐름이, 그의 손에서 신학교로 자라났다.
1931년, 그는 여러 여선교사와 함께 목사 안수를 받았다. 여성이 교회의 지도자로 세워지는 한 장면에, 그의 이름이 함께 있었다.
함께 온 남편을 일찍 잃고도 그 땅을 떠나지 않은 한 여인이 있었다. 머무를 이유보다 떠날 이유가 많았을 자리에서, 그는 남아서 다음 세대의 여성들을 길렀다.
연표
- 1913
남편 빅터 채핀과 함께 내한
- 1916
남편 별세, 한국 잔류 결정
- 1920
협성여자신학교 초대 교장 취임
- 1931
여선교사들과 함께 목사 안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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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채부인(안나 채핀) (Anna B. Chaffin, 1883–1977)」.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chaffin (열람: 2026. 7. 4.)
채부인(안나 채핀)의 삶에서,
당신은 무엇이 아름답다고 느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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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질문을 가지고 가세요 —
나라면 무엇에 내 삶의 값을 치르고 싶은가.
복음이라는 바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