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Research · 통합 리포트
평양, 부흥과 신학교
서북의 도시 평양은 한국 교회의 한 심장이 되었다. 마포삼열과 베어드가 신학교와 학교의 토대를 놓고, 하디의 원산 부흥이 1907년 평양 대부흥으로 이어졌으며, 그 자리에서 길선주·이기풍 같은 한국인 목사가 일어섰다. 평양을 중심으로 복음이 한국인에게로 흘러간 흐름을 모았다.
선교사 7명
활동기간
이 주제의 선교사

“이 사람들에게 참된 행복이 전혀 없다는 것 — 이들이 복음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첫인상을, 시간이 갈수록 지울 수 없었다.”

숭실학당(1897, 평양)을 세워 한국 근대 고등교육의 기틀을 놓은 교육 선교사. ‘배위량’이라는 한국 이름으로도 불렸다.
1892년 북장로회 선교사로 내한해 초기 게일과 함께 원산에서 사역하다, 원산이 캐나다 장로회로 이양되자 평양으로 옮겼다. 마포삼열 등과 1901년 평양신학교 설립에 참여해 구약학을 가르쳤고, 『구약사긔』·『교회사』를 펴냈다. 찬송가 「하늘 가는 밝은 길」 작사자로도 알려져 있다.
1892년 북감리회 선교사로 내한해 약 3년간 서울 배재학당 교사로 봉직한 뒤 1895년 평양으로 파송되어 평양·서울 지방 감리사로 오래 사역했다. 부인 매티 윌콕스 노블도 여성교육·성경학교 사업으로 활동했다. 1934년까지 한국에서 일했다.

1903년 원산에서의 회개 운동을 통해 1907년 평양 대부흥으로 이어진 영적 각성의 도화선이 된 선교사.

“나는 아간과 같은 죄인이올시다.”

첫 한국인 장로교 목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제주에 파송되어 복음을 전한 인물. 한국 교회의 자발적 선교를 상징한다.
관계의 흐름
- 동역마포삼열 → 윌리엄 베어드· 평양 선교 동역
- 동역소안론 → 마포삼열· 1901년 평양신학교 설립·교수 동역
- 사제마포삼열 → 길선주· 평양 신학교에서 길러낸 한국인 목사
- 사제마포삼열 → 이기풍· 평양 신학교 제자
- 길을 엶로버트 하디 → 길선주· 원산 부흥이 평양 대부흥으로 이어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