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 Mission Field 1932.1 · Internet Archive숭실학당(1897, 평양)을 세워 한국 근대 고등교육의 기틀을 놓은 교육 선교사. ‘배위량’이라는 한국 이름으로도 불렸다.
윌리엄 베어드, 한국 이름 배위량은 미국에서 자라 교육에 마음을 둔 선교사였다. 1891년 그는 조선에 들어와 부산과 대구를 거치며 사역을 시작했다. 낯선 땅의 여러 곳을 돌며 그는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보았다.
그가 본 것은 배움의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복음을 전하는 일도 중요했지만, 그것을 받아 깊이 새기고 다음으로 이어갈 사람을 길러내려면 학교가 있어야 했다.
1897년, 그는 평양에 숭실학당을 세웠다. 처음에는 작은 학교였다. 그러나 그는 그 배움의 자리가 단지 글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을 세우는 일이 되기를 바랐다.
그는 가르치는 일에 평생을 들였다. 교과서를 만들고, 학생을 가르치고, 학교를 키워 갔다. 눈에 띄는 사건보다 매일의 수업이 그의 일이었다.
그가 시작한 숭실학당은 훗날 한국 근대 고등교육의 한 기둥이 되는 숭실대학으로 자라났다. 한 사람이 평양에 세운 작은 학교가, 수많은 인재를 길러내는 자리가 된 것이다.
그는 조선의 이름으로 불리며 이 땅에 살았고, 이 땅에 묻혔다. 화려한 부흥의 주역은 아니었으나, 가르치는 일의 더딘 수고가 한 세대를 길러낸다는 것을 그의 삶이 보여 준다.
- 1891년 입국, 부산·대구를 거쳐 평양에 정착
- 1897년 숭실학당 설립, 1906년 숭실대학으로 발전 — 한국 최초의 근대 대학
- 기독교 인재 양성과 한국어 교육에 헌신
숭실은 신앙과 학문을 겸비한 민족 지도자를 길러냈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자진 폐교(1938)할 만큼 신앙의 지조를 지켰다. 그가 놓은 기독교 대학교육의 모범은 한국 교육사에 깊은 자취를 남겼다.
연표
- 1891
부산·대구 거쳐 입국
- 1897
평양 숭실학당 설립
- 1906
숭실대학 발전의 기초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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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윌리엄 베어드 (William M. Baird, 1862–1931)」.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baird (열람: 2026. 7. 4.)
윌리엄 베어드의 삶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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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무엇에 내 삶의 값을 치르고 싶은가.
복음이라는 바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