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media Commons메리 스크랜튼의 아들이자 의료 선교사. 1885년 어머니와 함께 입국해 정동에 시(施)병원을 열고 가난한 이들을 돌봤다. 상동교회를 중심으로 도시 민중 선교에 힘썼다.
윌리엄 스크랜튼은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한 의사였다. 그는 어머니 메리 스크랜튼과 함께 신앙의 가정에서 자랐고, 안정된 의사의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을 접고, 어머니와 함께 조선으로 떠나기로 했다.
1885년, 모자는 나란히 입국했다. 어머니는 여성 교육을, 아들은 의술을 들고 왔다. 그는 정동에 시병원을 열어 환자를 받기 시작했다.
그의 눈길은 점차 가장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로 향했다. 좋은 자리에서 형편이 나은 사람을 돌보는 대신, 그는 병원을 도시의 변두리 상동으로 옮겼다. 버림받은 환자, 갈 곳 없는 이들을 가까이서 돌보기 위해서였다.
그 선택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도시 민중의 곁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에서 일했다. 상동교회는 그렇게 가난한 이들 가운데 세워진 신앙의 공동체가 되었다.
그가 치른 값은 안락한 의사의 삶을 내려놓은 데 있었다. 더 편한 길이 있었으나, 그는 더 낮은 자리를 택했다.
그가 돌본 이들의 이름은 대부분 기록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낮은 곳을 향한 그 발걸음 자체가, 복음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조용히 보여 주었다.
- 1885년 어머니 메리와 함께 입국, 정동에 시(施)병원 개원
- 1888년 상동으로 병원 이전, 도시 빈민·민중 선교
- 상동교회를 중심으로 가난한 이들 곁의 사역
상동교회와 시병원은 도시 빈민 선교와 민족운동의 거점(상동청년회)이 되었고, 그의 민중 지향 사역은 한국 교회의 사회적 책임 전통에 자취를 남겼다.
연표
- 1885
어머니 메리와 함께 입국
- 1885
정동에 시병원 개원
- 1888
상동으로 병원 이전, 민중 선교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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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윌리엄 스크랜튼 (William B. Scranton, 1856–1922)」.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william (열람: 2026. 7. 4.)
윌리엄 스크랜튼의 삶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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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무엇에 내 삶의 값을 치르고 싶은가.
복음이라는 바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