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이 서서평(엘리자베스 셰핑)의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인터뷰입니다. 실제 발언 기록이 아닙니다.
- Q1.당신은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고, 조선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어디를 고향이라 부르시겠어요?
- 고향이라는 말을 들으면 저는 이상하게도 광주의 좁은 골목이 먼저 떠오릅니다. 비스바덴은 제가 태어난 곳이고 미국은 저를 간호사로 만든 곳이지만, 저를 ‘어머니’라 불러 준 사람들이 있는 곳이 제 고향이 아닐까요.
- Q2.세 살에 어머니와 헤어졌다고 들었습니다. 그 결핍이 당신의 삶을 어떻게 이끌었나요?
- 오래 미워하기도 했고 오래 그리워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사랑받지 못한 아이의 마음을 제가 알기에, 사랑받지 못한 아이를 길에서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 상처가 저를 그 아이들 곁으로 데려간 셈입니다.
- Q3.왜 하필 조선이었나요? 더 편한 선교지도 있었을 텐데요.
- 편한 곳을 찾았다면 저는 처음부터 배를 타지 않았을 겁니다. 조선에는 여성을 돌볼 여성 의료인이 부족했고, 아무도 만지려 하지 않는 병자들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가장 적게 가려는 자리, 저는 그 자리가 제 자리라고 느꼈습니다.
- Q4.‘서서평’이라는 이름은 어떤 마음으로 받으셨습니까?
- 저는 조선의 밥을 먹고 조선의 옷을 입기로 했습니다. 이름도 조선의 이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천천히, 그리고 평평하게 ― 높은 데 서지 않고 낮은 데서 고르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을 이름에 담아 준 것으로 압니다.
- Q5.간호를 그저 손기술이 아니라 하나의 직업으로, 배움으로 세우려 하셨습니다. 왜였나요?
- 돌보는 일은 천한 일이 아니라 거룩한 일입니다. 조선의 여성들이 그 일을 자부심을 가지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재를 우리말로 쓰고, 배움의 자리를 만들고, 협회를 세웠습니다. 저 하나가 하는 간호보다, 수백 명이 이어 갈 간호가 훨씬 크니까요.
- Q6.나환자들 곁에 사는 일이 두렵지 않으셨습니까?
- 병이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러나 저는 그들이 병보다 사람들의 눈빛에 더 아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손을 잡아 주는 일에는 큰 힘이 들지 않습니다. 다만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할 뿐입니다. 그래서 제가 했습니다.
- Q7.혼인하지 않은 몸으로 열넷의 아이를 기르셨습니다. 힘들지 않으셨나요?
- 밥이 늘 모자랐고 잠이 늘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아이 하나가 제 이름을 처음 부를 때, 저는 세 살에 잃어버린 무언가를 조금씩 되찾는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기른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저를 어머니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 Q8.당신의 봉급과 옷과 이불까지 다 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남긴 것은 없었습니까?
- 필요한 것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다리 밑에서 떨고 있는 사람을 보고 나면 제 담요가 통째로 제 것일 수는 없더군요. 절반은 그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나누고 나면 남는 것이 적었지만, 마음은 늘 넉넉했습니다.
- Q9.당신의 장례 행렬에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라는 문장이 걸렸다고 전해집니다. 그 말의 뜻을 스스로 풀어 주신다면요?
- 저는 무엇을 이루려고 조선에 온 것이 아닙니다. 큰 병원을 짓거나 이름을 남기려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눈앞의 한 사람을 섬기고, 그 다음 한 사람을 섬겼을 뿐입니다. 삶이 성공으로 기억되기보다 섬김으로 기억되기를 바랐습니다.
- Q10.지금의 우리에게 한 가지를 남긴다면 무엇을 남기시겠어요?
- 거창한 것을 하려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곁의 가장 낮은 한 사람을 오늘 섬기십시오. 그 작은 섬김이 매일 쌓이면, 그것이 곧 한 사람의 생애가 됩니다. 저는 그렇게 살았고, 후회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