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 Mission Field 1918.12(세브란스 간호졸업) · Internet Archive“성공이 아니라 섬김.”
독일 태생 미국 간호 선교사로 광주에서 여성·고아·한센병 환자를 돌보고 조선간호부회(현 대한간호협회)를 세운 여성운동 선구자. (양림동 묘역 안장 여부는 자료 간 차이가 있음)
엘리자베스 셰핑, 한국 이름 서서평은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은 평탄하지 않았다. 외로움과 결핍을 겪으며 자란 그는, 간호사가 되어 다른 이의 아픔을 돌보는 길로 들어섰다.
1912년, 그는 간호 선교사로 조선에 들어와 광주에 자리 잡았다. 그가 향한 곳은 아무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버려진 여성, 갈 곳 없는 고아, 그리고 사람들이 두려워 피하던 한센병 환자들이었다.
그는 그들을 멀리서 돕지 않았다. 곁에서 함께 살며 돌보았다. 한센병 환자의 손을 잡고, 버려진 아이를 자기 자식처럼 거두었다. 사람들이 외면한 자리에, 그는 들어가 머물렀다.
그는 조선의 간호사들을 길러내는 일에도 힘을 쏟았다. 조선간호부회를 세워, 간호하는 일을 제대로 된 직업으로 세우려 했다. 오늘의 대한간호협회가 그 뿌리에 닿아 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았다. 가진 것을 나누어 주고, 자신은 헐벗은 채 살았다. 전해지는 바로,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남긴 것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1934년 그는 광주에서 별세했다. 그는 가장 낮은 이들의 친구로 살다, 가장 낮은 이들 곁에서 생을 마쳤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그가 무엇을 남기지 않았는지로 더 분명히 드러난다.
- 1912년 독일 태생 미국 간호선교사로 광주에 입국
- 여성·고아·한센병 환자·과부를 돌보며 가장 낮은 자들 곁에서 사역
- 1923년 조선간호부회(현 대한간호협회) 창립, 간호 전문교육을 시작
- 이일학교(여성교육)를 세우며 ‘성공이 아니라 섬김’의 삶을 살아냄
한국 간호계의 기틀을 놓았고, 여러 양딸과 수많은 고아를 거둔 그녀의 삶은 ‘한국의 어머니’로 불린다. 별세 후 광주 최초의 시민장으로 치러졌고,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라는 유산은 오늘도 회자된다.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조선을 집으로 삼았습니다. 광주 양림동 선교사묘역에 잠들어 있습니다.
심화 연구 · 학생 탐구반 장의 담요 ― 조선의 작은 예수, 서서평이야기 읽기 →연표
- 1912
광주에서 간호 선교
- 1923
조선간호부회 창립
- 1934
광주에서 별세
관계
관련 영상
외부 링크
사진 출처: The Korea Mission Field 1918.12(세브란스 간호졸업) · Internet Archive (CC/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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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서서평 (Elisabeth J. Shepping, 1880–1934)」.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shepping (열람: 2026. 7. 4.)
서서평의 삶에서,
당신은 무엇이 아름답다고 느꼈나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이 질문을 가지고 가세요 —
나라면 무엇에 내 삶의 값을 치르고 싶은가.
복음이라는 바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