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media Commons1890년 성공회 선교단의 일원으로 내한해 10년을 사역하고, 1911년 제3대 조선교구장 주교로 다시 부임한 영국 성공회 선교사이자 한국학자.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회장을 13년간 맡아 한국의 역사·서지를 연구했고, 서울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주교좌성당(1924년 착공)을 세웠다.
마크 네이피어 트롤로프는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사제였다. 1890년, 그는 코프 주교가 이끄는 성공회 선교단의 한 사람으로 조선에 왔다. 갓 서른을 앞둔 젊은 사제였다.
그는 한국에서 약 10년을 보낸 뒤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한국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1911년, 그는 제3대 조선교구장 주교가 되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떠날 생각이 없는 걸음이었다.
트롤로프는 조금 특별한 선교사였다. 그는 한국을 ‘가르칠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배워야 할 오래된 문명’으로 대했다. 한국의 옛 책을 모으고 역사를 연구했으며,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의 회장을 13년 동안 맡아 서양 학자들에게 한국을 알렸다.
그 존중의 마음은 한 채의 건물로도 남았다. 그는 서울 정동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주교좌성당을 세우기로 했다. 1924년에 착공된 그 성당은, 신앙과 아름다움을 함께 담으려 한 그의 마음이 돌과 벽돌로 굳어진 것이었다.
1930년, 그는 유럽에서 교회 회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그런데 입항하던 배가 다른 배와 부딪혔다. 그 충격으로 그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돌아오던 길 위에서 맞은 죽음이었다.
그가 세운 서울대성당은 오늘도 도심 한복판에 서 있다. 선교와 학문을, 신앙과 문화를 함께 끌어안으려 한 한 사람의 흔적이다. 그는 한국을 연구하다, 끝내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생을 마쳤다.
유럽에서 교회 회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길, 입항하던 배가 다른 배와 충돌했고 그 충격으로 그는 1930년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얼굴은 한국을 향하고 있었다.
- 1890년 성공회 선교단의 일원으로 내한, 약 10년간 강화·서울에서 사역
- 1911년 제3대 조선교구장 주교로 다시 부임 —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국 성공회를 이끎
- 왕립아시아학회(RAS) 한국지부 회장을 13년간 맡아 한국의 역사·서지·문화를 깊이 연구
- 서울 정동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주교좌성당(성공회 서울대성당)을 1924년 착공해 세움
그가 세운 서울대성당은 오늘까지 도심 한복판에 남아 한국 성공회의 상징이 되었고, 그의 한국학 연구는 서양이 한국을 학문으로 이해하는 통로가 되었다. 선교와 학문, 신앙과 문화를 함께 끌어안은 자취다.
연표
- 1890
성공회 선교단으로 내한
- 1911
제3대 조선교구장 주교 부임
- 1924
서울 주교좌성당 착공
- 1930
램버스회의 귀국길 선박 충돌 충격으로 별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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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조마가(트롤로프) (Mark N. Trollope, 1862–1930)」.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trollope (열람: 2026. 7. 4.)
조마가(트롤로프)의 삶에서,
당신은 무엇이 아름답다고 느꼈나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이 질문을 가지고 가세요 —
나라면 무엇에 내 삶의 값을 치르고 싶은가.
복음이라는 바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