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초대 조선교구장 주교로 서품받고 1890년 제물포에 상륙한 영국 성공회 선교사. 강화도를 첫 선교지로 삼고 서울·제물포에 성당과 병원을 세워 한국 성공회의 뿌리를 놓았다. 영국 해군 군종 출신답게 의료·교육을 앞세운 조용한 선교를 폈다.
찰스 존 코프는 영국 해군의 군종 사제였다. 군함을 따라 바다를 떠돌며 수병들의 곁을 지키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1889년, 뜻밖의 부름이 왔다. 아직 성공회가 한 사람도 들어가지 않은 나라, 조선의 첫 주교가 되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조선교구장 주교로 서품을 받았다. 그러나 그 자리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신자도 교회도 없는 땅으로 가는 길이었다. 1890년, 그는 동료 몇 사람과 함께 제물포에 내렸다. 먼저 와 있던 장로회·감리회보다 늦은 걸음이었다.
코프는 서두르지 않았다. 큰 도시의 중심을 차지하기보다, 강화도라는 섬마을을 첫 선교지로 골랐다. 거기서 그는 병자를 돌보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말로 설득하기 전에, 손으로 돕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는 서울에 성미카엘교회를 세우고, 서울과 제물포에 병원을 열었다. 해군 군종으로 살아온 사람답게, 그의 선교에는 절제가 배어 있었다. 자기 이름을 드러내거나 교세를 자랑하는 일을 그는 즐기지 않았다.
1904년, 그는 주교직을 내려놓고 조용히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가 남긴 것은 거대한 교회 조직이 아니라, 강화와 서울에 뿌리내린 작은 신앙의 씨앗들이었다.
한국 교회사를 이야기할 때 그의 이름은 자주 가려진다. 그러나 성공회라는 또 하나의 큰 줄기—오늘 서울 도심에 성당을 두고 이어지는 그 흐름은, 바다를 떠돌던 한 군종 사제가 늦게나마 이 땅에 첫발을 디딘 데서 시작되었다.
해군 군종의 절제와 겸손으로, 자기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한 교파의 첫 길을 묵묵히 닦았다. 1904년 주교직을 내려놓고 조용히 귀국했다.
- 1889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초대 조선교구장 주교로 서품 — 영국 성공회의 한국 선교 시작
- 1890년 동료들과 함께 제물포에 상륙, 강화도를 첫 선교지로 삼아 사역을 폄
- 서울에 성미카엘교회를 세우고, 서울 두 곳·제물포 한 곳에 병원을 열어 의료선교의 기초를 놓음
- 영국 해군 군종 출신으로, 요란한 전도보다 의료·교육·기도로 다가가는 절제된 선교를 지향
그가 놓은 강화·서울의 토대 위에 한국 성공회가 자랐고, 의료와 교육을 앞세운 그의 방식은 뒤이은 터너·트롤로프 주교에게로 이어졌다. 한국 교회사에서 자주 가려지지만, 성공회라는 또 하나의 큰 줄기가 이 사람에게서 시작되었다.
연표
- 1889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초대 조선 주교 서품
- 1890
제물포 상륙 — 선교 시작
- 1891
서울 성미카엘교회·병원 설립
- 1904
주교 사임 후 귀국
관계
참고 출처
- 한국 기독교의 역사 I한국기독교역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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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고요한(코프) (Charles John Corfe, 1843–1921)」.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corfe (열람: 2026.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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