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media Commons“나는 이 서양 의학을 한국말로 가르쳐야 한다고 결정했다.”
제중원을 인계받아 운영하고 세브란스병원·의학교를 세워 한국 근대 의학 교육을 개척한 의료 선교사. ‘어비신’으로 불렸다.
올리버 에비슨, 한국 이름 어비신은 캐나다에서 의학을 가르치던 의사였다. 그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안정된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한 선교 집회에서 조선의 사정을 듣고, 그 안락한 자리를 내려놓기로 했다.
1893년 그는 입국해 제중원을 맡았다. 알렌과 헤론을 거쳐 온 그 병원은 운영이 쉽지 않았다. 그는 병원을 다시 일으키고, 환자를 돌보는 한편 새로운 꿈을 품었다. 조선 사람이 직접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의술을 베푸는 데 그치지 않고, 의술을 가르치고자 했다. 외국인 의사가 영원히 머물 수는 없으니, 조선 땅에 조선인 의사가 자라나야 한다고 믿었다.
미국의 한 사업가 세브란스의 후원으로, 그는 세브란스병원을 세웠다. 그리고 병원에 의학교를 두어 학생을 가르쳤다. 진료와 교육이 한자리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1908년, 그가 가르친 학생 가운데 한국 최초의 면허 의사들이 배출되었다. 조선 사람이 정식 의사로 인정받아 동포를 치료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바라던 일이 마침내 이루어졌다.
그는 자신이 모든 환자를 직접 고치려 하지 않았다. 대신 환자를 고칠 사람을 길러냈다. 한 사람의 의사를 넘어, 의사들을 낳는 일—그것이 그가 평생 매달린 일이었다.
- 1893년 입국, 제중원을 인계받아 운영
- 1904년 세브란스병원, 1908년 세브란스의학교 설립 — 한국 첫 면허 의사 7인 배출
- 의학 교과서를 한글로 번역하며 한국인 의료인 양성에 집중
- 연희·세브란스 교장을 겸하여 의학·고등교육의 통합 발전을 이끎
세브란스에서 배출된 한국인 의사들은 근대 의학과 독립운동의 인재가 되었고(예: 박서양), 의료·교육·신앙을 하나로 묶은 그의 모델은 한국 기독교 사회봉사의 본이 되었다.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조선을 집으로 삼았습니다. 양화진에 잠들어 있습니다.
연표
- 1893
입국해 제중원 책임
- 1904
세브란스병원 설립
- 1908
한국 첫 면허 의사 배출
관계
관련 영상
원본 사진 모음 · 4점
공개 자료에서 본인으로 확인된 사진입니다. 기본은 원본(흑백)이며, ‘컬러’를 누르면 같은 톤의 AI 복원본으로 봅니다.

1904년 세브란스병원에서 병원장인 올리버 R 에비슨의 수술을 보조하는 박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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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세브란스병원에서 병원장인 올리버 R 에비슨의 수술을 보조하는 박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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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세브란스병원에서 병원장인 올리버 R 에비슨의 수술을 보조하는 박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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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 of Oliver R Av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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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올리버 에비슨 (Oliver R. Avison, 1860–1956)」.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avison (열람: 2026. 7. 4.)
올리버 에비슨의 삶에서,
당신은 무엇이 아름답다고 느꼈나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이 질문을 가지고 가세요 —
나라면 무엇에 내 삶의 값을 치르고 싶은가.
복음이라는 바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