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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Dreamy School

윌리엄 레이놀즈 · 가상 인터뷰

드리미학교 ‘Missionaries from Aunae’ · AI 재현 인터뷰

시나리오 김한결 · 드리미학교 7기영상제작 김한결 · 드리미학교 7기

학생들이 레이놀즈(이눌서) 선교사의 생애와 사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실제 발언 기록이 아닙니다.

Q1.선교사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미국에서는 윌리엄 데이비스 레이놀즈라 불렸지만, 저는 이렇게 소개하곤 했습니다—전주 이씨 이눌서입니다. 사람들이 지어 준 그 이름이, 이내 제 본래 이름보다 더 저다워졌습니다.
Q2.원래 꿈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조선까지 오게 되셨나요?
본래 저는 언어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존스홉킨스에서 헬라어와 라틴어를 공부하며 평생 책상 앞에서 살 줄 알았지요. 그런데 아버지의 사업이 무너지며 그 꿈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1891년 신학교에서 언더우드 선교사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백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듬해 1892년, 저는 아내와 함께 조선으로 가는 배에 올랐습니다.
Q3.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였습니다. 남의 말을 알아듣지도, 제 뜻을 전하지도 못하는 외로움은 말로 다 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 수첩을 들고 다니며 새로 들은 낱말을 적었습니다. 처음으로 누군가 한국어로 말을 걸어왔을 때 단어를 더듬지 않고 대답한 순간, 비로소 제가 이곳에 속하기 시작했음을 알았습니다.
Q4.동료를 잃는 아픔도 겪으셨지요.
1908년, 저와 함께 처음 조선에 온 친구 전킨이 폐렴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가 겪은 가장 힘든 일이었습니다.
Q5.조선에서 어떤 사역들을 하셨나요?
전주에서는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시작했습니다. 뒤에는 평양의 신학교에서 장차 목사가 될 이들을 가르쳤습니다.
Q6.가장 오래 바친 일은 성경 번역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레미야서를 제외한 구약의 거의 모든 책이 제 손을 거쳤습니다. 더디고 힘든 일이었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또렷이 이해할 수 있다면 그 한 시간 한 시간이 값졌습니다.
Q7.삶을 돌아보실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 삶을 돌아볼 때, 저는 우리가 세운 교회나 연 학교, 옮긴 성경의 페이지를 먼저 떠올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게 하신 ‘사람들’을 먼저 생각합니다.
Q8.후대에 남기고 싶은 기도가 있다면요.
두려워하던 젊은이를 붙드시어 사랑할 백성을 주시고, 평생 바칠 일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다음 세대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을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