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경성의 가마쿠라보육원에서 1,000명이 넘는 조선인 고아를 돌본 일본인 평신도로 ‘고아의 아버지’로 불린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된 유일한 일본인이며, 일본인 최초로 대한민국 정부 훈장을 받았다.
소다 가이치는 일본 사람이었다. 식민지의 지배국에서 온 그가, 식민지 조선의 가장 약한 아이들 곁에 평생을 머물렀다는 사실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어느 평신도였고, 거창한 직함도 없었다.
그가 돌본 것은 갈 곳 없는 조선의 고아들이었다. 경성의 가마쿠라보육원에서, 그는 천 명이 넘는 아이들을 거두어 먹이고 키웠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은 그를 ‘고아의 아버지’라 불렀다.
일본인이 조선 아이들을 자식처럼 품는 일은, 그 시대의 공기 속에서 결코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국적이 그어 놓은 선을 넘어, 눈앞의 한 아이를 그저 한 아이로 보았다.
그의 곁에는 한국 교회의 사람들도 있었다. 신앙 안에서 그는 조선의 이웃들과 이어졌고, 미움이 당연하던 자리에서 다른 길을 걸었다.
1962년 그는 서울에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되었는데, 그곳에 묻힌 유일한 일본인이 그다. 그 무렵 그는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훈장을 받았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짓밟던 시절, 그 틈에서 한 사람이 아이들의 손을 잡았다. 미움의 시대에 사랑을 택한 그 자리가, 양화진 한편에 조용히 남아 우리에게 묻는다.
연표
- 1905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옴
- 1921
가마쿠라보육원 경성지부장 취임, 고아 양육
- 1962
서울에서 별세, 양화진 안장(일본인 유일)
- 1962
일본인 최초 대한민국 정부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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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소다 가이치 (Soda Kaichi, 1867–1962)」.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soda (열람: 2026. 7. 4.)
소다 가이치의 삶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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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무엇에 내 삶의 값을 치르고 싶은가.
복음이라는 바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