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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Charles D. Morris · 1869–1927 · 미국

북감리회개척 목회 · 의료원주

아일랜드 태생의 미감리회 선교사로 1900년 무렵 내한해 평양·영변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영변에서 첫 교회를 세우고 여러 교회를 개척하며 학교와 진료소를 열었고, 1916년경부터 원주지방 감리사로 강원·충청·경기 일대 교회를 감독했다. 1927년 세브란스병원에서 별세해 양화진에 안장됐다.

이야기

모리스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미감리회 선교사로 1900년 무렵 조선에 들어왔다. 그가 일한 곳은 평양과 영변, 그리고 훗날의 원주였다. 한곳에 머물기보다 새로운 자리를 개척하는 사람이었다.

영변에서 그는 첫 교회를 세웠다. 아직 복음이 닿지 않은 땅에 처음 모임을 일구는 일은 더디고 외로운 수고였다. 그는 거기에 교회만이 아니라 학교와 진료소도 함께 두었다.

가르치고 치료하는 일은 전도와 따로 있지 않았다. 배우지 못한 이에게 배움을, 아픈 이에게 돌봄을 — 그는 한 사람의 여러 필요를 함께 살피려 했다. 영변 일대에 여러 교회가 그렇게 생겨났다.

1916년 무렵부터 그는 원주지방의 감리사가 되어, 강원과 충청, 경기 일대의 교회를 돌보았다. 개척하는 자리에서 감독하는 자리로, 그의 책임이 넓어졌다.

원주에는 그가 살던 집이 지금도 '모리스 주택'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등록문화재가 되었다. 한 선교사가 머문 자리가, 그 지역의 근대 유산으로 남은 것이다.

1927년, 그는 세브란스병원에서 눈을 감고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변방의 작은 마을마다 교회와 학교와 진료소를 남긴 그의 발자취가, 강원과 평안의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입국
1900년 무렵 (북감리회)
소속
미감리회(북감리회)
사역
영변·평양·원주 — 교회 개척, 학교·진료소
대표 업적
영변 첫 교회 개척 · 원주지방 감리사 · 원주 모리스 주택(등록문화재)

연표

  1. 1900

    미감리회 선교사로 내한, 평양 파송

  2. 1905

    영변 사역 시작 — 교회·진료소·학교 설립

  3. 1916

    원주지방 감리사로 강원 일대 감독

  4. 1927

    세브란스병원에서 별세, 양화진 안장

참고 출처

  • 한국 기독교의 역사 I
    한국기독교역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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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모리스 (Charles D. Morris, 1869–1927)」.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morris (열람: 2026. 7. 4.)

잠시, 묻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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