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media Commons (PD)캐나다 노바스코샤 출신의 자비량(독립) 선교사. 1893년 한국에 도착해 한국인과 같은 생활을 하며 황해도 소래(송천)에서 한국 최초의 자생 교회 중 하나인 소래교회를 목회했다. 1895년 열병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소래에서 별세했고, 그의 죽음은 캐나다 장로회가 1898년 공식 선교사를 한국에 파송하는 계기가 되었다.
윌리엄 매켄지는 캐나다 노바스코샤의 한 섬에서 자랐다. 그는 어느 교단의 공식 파송을 받지 못한 채, 스스로 비용을 감당하는 자비량 선교사로 1893년 조선에 들어왔다. 부르심을 따라 홀로 나선 길이었다.
그가 자리 잡은 곳은 황해도 소래, 송천이라 불리던 마을이었다. 그곳에는 한국인의 손으로 세워진 자생 교회가 있었다. 매켄지는 그 교회를 목회하며, 무엇보다 한국인들과 똑같이 살기를 택했다.
그는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식으로 지내며, 마을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머물렀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선교사가 아니라, 곁에서 함께 사는 이웃이 되려 한 것이다.
그러나 낯선 풍토와 고된 생활은 그의 몸을 갉아먹었다. 1895년, 열병으로 건강이 크게 무너진 끝에 그는 소래에서 세상을 떠났다. 조선에 온 지 채 몇 해 되지 않은 이른 죽음이었다.
그의 죽음은 멀리 캐나다에 전해졌다. 한 사람이 홀로 가서 외롭게 스러졌다는 소식은, 캐나다 장로회가 1898년 마침내 공식 선교사들을 조선에 보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홀로 낸 길 위로, 뒤이어 여럿이 걸어 들어온 것이다.
소래의 작은 마을에서 그는 짧게 살다 갔다. 그러나 한국인과 똑같이 살기를 택한 그 자세와, 그의 외로운 죽음이 연 길은, 이후 캐나다 선교의 시작점으로 오래 기억된다.
연표
- 1861
캐나다 노바스코샤에서 출생
- 1893
자비량 선교사로 한국 도착
- 1894
황해도 소래에 정착, 소래교회 사역
- 1895
소래에서 별세 — 캐나다 장로회 선교의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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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매켄지 (William J. McKenzie, 1861–1895)」.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mckenzie (열람: 2026. 7. 4.)
매켄지의 삶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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