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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어스 호턴 초상Wikimedia Commons

릴리어스 호턴

Lillias Horton Underwood · 1851–1921 · 미국

북장로회 의료여성의료한양 · 정동

여의사로 입국해 명성황후를 진료했고, 언더우드와 결혼해 함께 사역하며 회고록을 남긴 여성 선교사.

이야기

릴리어스 호턴은 미국에서 의학을 익힌 여성이었다. 여성이 의사가 되기 어렵던 시절, 그는 그 길을 걸어 의사가 되었고, 그 기술을 들고 조선으로 향했다. 1888년, 그는 여의사로 입국했다.

그는 명성황후를 진료하는 일을 맡았다. 궁궐의 여성을 살피는 일은 남자 의사가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여의사인 그의 역할은 특별했다. 그는 궁중과 민간을 오가며 여성들을 돌보았다.

조선에서 그는 동료 선교사 호러스 언더우드를 만나 결혼했다. 두 사람은 부부이자 동역자로 함께 살았다. 언더우드가 번역과 교육과 전도에 매달릴 때, 그는 의사로서, 그리고 동반자로서 그 곁을 지켰다.

선교사의 아내이자 의사로 사는 삶은 두 몫의 짐을 지는 일이었다. 그는 진료하고, 가정을 꾸리고, 남편의 일을 도왔다. 그 모든 일이 늘 평탄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보고 겪은 조선에서의 삶을 글로 남겼다. 회고록 속에는 화려한 업적이 아니라, 낯선 땅에서 한 여인이 겪은 일상과 어려움과 정이 담겨 있다.

그가 남긴 기록은 그 시대를 살아간 선교사들의 인간적인 결을 오늘에 전한다. 영웅의 무용담이 아니라, 한 사람의 눈으로 본 진솔한 이야기로서 말이다.

걸어온 사역
  • 1888년 여의사로 입국, 명성황후 진료
  • 1889년 언더우드와 결혼, 전국 순회전도 동행
  • 회고록 등 기록으로 초기 선교를 증언
남긴 열매

그녀의 진료는 왕실과의 신뢰를, 회고록은 초기 선교의 생생한 기록을 남겼다. 부부 선교사의 동역 모델을 보여준 인물이다.

Korea is home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조선을 집으로 삼았습니다. 양화진에 잠들어 있습니다.

입국
1888년
소속
북장로회 의료
사역
여성의료
대표 업적
광혜여원 · 회고록

연표

  1. 1888

    여의사로 입국

  2. 1889

    언더우드와 결혼

  3. 1904

    회고록 집필

관계

참고 출처

  • 한국 기독교의 역사 I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외부 링크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CC/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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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릴리어스 호턴 (Lillias Horton Underwood, 1851–1921)」.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lillias (열람: 2026. 7. 4.)

잠시, 묻는 자리

릴리어스 호턴의 삶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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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무엇에 내 삶의 값을 치르고 싶은가.
복음이라는 바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