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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윅(편위익) 초상M. C. Fenwick, 『The Church of Christ in Corea』(1911) 권두 도판 ‘Mr. Fenwick and Pastor Sen’ — 퍼블릭 도메인(archive.org)

펜윅(편위익)

Malcolm C. Fenwick · 1863–1935 · 캐나다

침례교(대한기독교회)개척 선교 · 번역원산

캐나다 출신 독립 선교사로 1889년 내한해 장로교·감리교가 닿지 않던 함경도 원산을 중심으로 자급자립 토착 선교를 펼쳤다. 1906년 충남 강경에서 '대한기독교회'를 조직해 오늘날 기독교한국침례회의 기초를 놓았고, 신약전서 『만민됴흔긔별』(1917)을 직접 번역·출간했다. 1935년 원산에서 별세했다.

이야기

말콤 펜윅, 한국 이름 편위익은 1889년 캐나다에서 홀로 조선에 들어왔다. 그는 어느 큰 교단의 파송을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비용을 감당하는 독립 선교사였다. 부르심 하나만을 들고 나선 길이었다.

그가 향한 곳은 다른 선교사들의 손이 잘 닿지 않던 함경도, 원산 일대였다. 장로교와 감리교가 서울과 평양을 중심으로 펼쳐질 때, 그는 변방의 오지를 자신의 자리로 택했다.

그의 방식은 자급자립이었다. 농장을 일구어 스스로 먹고살며, 그 땅의 사람들과 같은 처지에서 복음을 전했다. 멀리서 후원받는 선교가 아니라, 함께 땀 흘리는 선교였다.

1906년, 그는 충남 강경에서 '대한기독교회'를 조직했다. 오늘날 기독교한국침례회로 이어지는 이 교회의 뿌리를 그가 놓은 것이다. 큰 교단의 그늘 밖에서, 하나의 새로운 줄기가 자라기 시작했다.

그는 직접 성경을 옮기기도 했다. 1917년 펴낸 신약전서 『만민됴흔긔별』은, 사람들에게 직접 읽히고자 한 그 마음의 결실이었다. 제목 그대로, 모든 사람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려 한 것이다.

1935년, 그는 평생을 보낸 원산에서 눈을 감았다. 중심이 아니라 변방을 택하고, 큰 조직이 아니라 작은 자급의 길을 걸은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연 줄기는 지금도 한국 침례교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입국
1889년 (캐나다 독립 선교사)
소속
대한기독교회(현 기독교한국침례회 모체)
사역
원산 중심 함경도·간도 오지 순회·자급선교
대표 업적
한국 침례교 개척 · 『만민됴흔긔별』(1917) 번역

연표

  1. 1889

    캐나다 독립 선교사로 내한

  2. 1906

    강경에서 '대한기독교회' 조직

  3. 1917

    신약전서 『만민됴흔긔별』 번역·출간

  4. 1935

    원산에서 별세

참고 출처

  • 한국 기독교의 역사 I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외부 링크

사진 출처: M. C. Fenwick, 『The Church of Christ in Corea』(1911) 권두 도판 ‘Mr. Fenwick and Pastor Sen’ — 퍼블릭 도메인(archive.org) (CC/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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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펜윅(편위익) (Malcolm C. Fenwick, 1863–1935)」.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fenwick (열람: 2026.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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